내가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는 아마 믿기 조금 힘들 거야.


정치에 과몰입한 사람들 (이 사람들이 벌이는 행각을 생각해보면 이것도 아주 순화한 표현입니다) 때문에 요즘 많이들 피곤하시죠. 이런 분들이 스스로 만들어낸 버블 속에 갇혀있기 때문에 소통의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것은 이미 많이들 하는 이야기라서 사실 새로운 것도 없습니다. 그래도 아래 만화는 그 새로울 것도 없는 이야기를 조금 더 차분하게 풀어나갔기에 한번 공유해봅니다. 그 분들하고 소통하기 힘들다면 우리라도 그러지 말아야 하니까요. 처음 본 것이 언제인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데, 꽤 오래전 만화입니다. 그림체가 약간 독특한 사람이라 호불호가 갈릴 수 있음을 미리 알려드립니다.

영어가 불편하지 않으신 분들은 그냥 아래 링크로 가서 보시길 추천합니다.

https://theoatmeal.com/comics/believe


내가 지금부터 이야기를 하나 해줄 거야.
어쩌면 믿기 힘든 이야기일 수도 있어.
뭐 괜찮아
그럴 이유가 있으니까.
하지만, 설령 내 이야기가 너의 가치관과 잘 맞지 않더라도 일단 끝까지 들어보길 바래.


니가 리버럴이든 보수든  중도파든 상관 없어.
니가 개를 좋아하든 고양이를 좋아하든, 설령 타란튤라를 좋아하든 상관 없어.
아침형 인간이든 저녁형 인간이든,
아이폰을 좋아하든 안드로이드를 좋아하든
코카콜라파든 펲시파든
다 상관없어. 
단 한가지 부탁하고 싶은 것은, 이 이야기를 끝까지 읽어달라는 거야.


오케이? 
좋아 그럼 시작하자.


아마 너는 조지 워싱턴은 나무 이빨을 가졌었다는 이야기를 들어봤을거야.
(조지 워싱턴): (영어 말장난)
[주: 조지 워싱턴은 미국 우파 사이에서는 신성 불가침의 존재같은 겁니다. 박정희 대통령을 상상하시면 되겠네요]


워싱턴은 젊었을 때 이빨이 다 빠져서 나무로 된 의치를 썼다는 거지.
건국의 아버지이자 독립 전쟁 최고 사령관이 나무 이빨을 써서 햄 샌드위치를 먹는 모습을 상상해봐. 좀 그로테스크하지?
(조지 워싱턴): 한 입 나눠줘?
근데 이 이야기는 사실이 아니야.


2005년 미국 치과 박물관에서 워싱턴의 틀니를 분석해본 결과, 이건 나무가 아니라 금, 납, 하마의 상아, 말과 당나귀의 이빨등으로 만든 것이라는 사실이 밝혀졌어. 동물들 입장에서는 악몽같은 모습이었겠지.
[주: 여기서 작가는 근거 링크를 세 개 제공합니다]


자, 그럼 이제 너가 그동안 몰랐던 새로운 지식을 하나 알게 되었으니 하나 물어볼께.
기분이 어때?
나는 하나의 주장을 펄쳤고, 근거를 제시했지. 그리고 모르긴 해도 아마 너는 별다른 거부감 없이 그 주장에 동의했을 거야.
이제 새로운 사실을 하나 알았으니 다음번에 친구들을 만나면 이 이야기를 퍼뜨릴 수도 있겠지.
동의해?
좋아 그럼 계속 해보자고.


아까와 달리, 만약 내가 워싱턴에게는 또 하나의 틀니가 있었다고 주장한다면 너는 기분이 어떨까?
상아나 금 따위가 아니라 다른 재료로 만든 틀니 말야.
노예들의 이빨을 모아서 만든 틀니.
[주: 여기서 또 근거 링크를 세 개 제공합니다]


자 이번에는 기분이 어때? [주: 워싱턴을 상상하시면 안되고 박정희의 새로운 치부에 대해서 들은 보수 아재의 심정을 상상하셔야 합니다. 아니면 반대로 문재인의 치부에 대해서 들은 진보 아재의 심정을 상상하셔도 되겠습니다. 이 만화는 보수나 진보를 지지하기 위한 만화가 아닙니다]
아까보다 거부감이 좀 더 드나?
여기서 이야기를 더 하기 전에 하나 확실히 해둘게. 
난 지금 워싱턴을 공격하려는 것이 아니야. 
그동안 워싱턴에 대해서 공부하면서 모아놓은 자료들이 조금 있는데, 여기서 증거들을 체리피킹하면 얼마든지 워싱턴을 신적인 존재로 묘사할 수도 있고 악마같은 놈으로 묘사할 수도 있어. 애국자로 만들 수도 있고 괴물같은 놈이었다고 주장할 수도 있어.
근데 그런 것은 내 이야기와 아무 상관이 없어. 
내가 워싱턴 에피소드를 이용해서 너한테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사람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접했을 때 어떤 것은 쉽게 받아들이지만 어떤 것은 굉장히 감정적으로 반응한다는 점이야.
워싱턴의 첫번째 틀니 이야기는 받아들이기에 어렵지 않았지? 
모르긴 해도, 내가 근거 자료를 보여주지 않았어도 너는 아마 내 이야기를 그냥 믿었을 거야.
하지만 두번째 틀니 이야기를 본 사람들 중 상상수는 아마 엄청 분노하면서 내 근거 링크들을 클릭해봤을 거고, 나름대로 자료를 수집해서 이 만화 아래 코멘트란에 반박문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을 거야.
(만화, 분노한 독자): 니 가치관 따위는 개나 주라고 해!
뭐 괜찮아. 사람은 원래 그렇게 동작하게 되어 있으니까.


몇 개 더 해볼까?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키가 작지 않았어.
이 사람 키는 165cm 정도였고, 이 정도면 당시 프랑스 남자 평균 신장을 넘지.
(표지판): 유럽을 정복하려면 최소 이정도는 커야함.
[주: 또 근거 링크 2개]


집파리는 하루밖에 살지 못하는 게 아니라 꽤 오래, 한 달 정도 살아 [주: 미국에는 집파리가 하루살이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파리1): 아아 짧은 인생이여
(파리2): 아닌데?
[주: 또 링크 2개]


인간이 진공에 노출된다고 해서 터져버리거나 끓어오르지 않아.
그냥 산소 부족으로 기절한 뒤에 죽을 뿐이지.
[주: 또 링크 2]


어때? 받아들이지 별로 어렵지 않지?
그럼 마지막으로 몇 개만 더 볼까?


예수가 크리스마스에 태어났다는 증거는 단 하나도 없어.
(예수): 뭐 괜찮아. 내 생일 좀 까먹을 수도 있지 뭐. 2천년 내내.
[주: 링크 3개]


국기에 대한 맹세를 쓴 사람은 사회주의자야
[주: 링크 3개]


역사에 남은 낙태 허가 판결을 이끌어낸 대법관들은 대부분 공화당에서 임명한 사람들이야 [주: 요즘은 낙태 찬성하면 민주당 반대하면 공화당이라는 공식이 있고, 온/오프라인에서 편 갈라서 지겹게 싸웁니다]


어때, 아까에 비해서 머리가 조금 뜨거워지나?
그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나폴레옹 이야기 들을 때와는 조금 기분이 다르지?
인정하나?
인정한다면, 우리는 도대체 왜 그런 걸까?


왜 우리는 어떤 아이디어는 쉽게 받아들이지만 다른 아이디어에는 거부감을 느낄까?
왜 우리는 기존 믿음과 반대되는 새로운 사실을 들으면 이빨을 갈 정도로 분노하게 될까?
왜 우리는 기존 믿음과 반대되는 사실을 들으면 종종 오히려 기존 믿음이 강해질까?
왜 어떤 사람들은 새로운 이야기를 들을 능력 자체를 상실한 것처럼 보일까?
나같은 일반인에게는 이런 상황은 그냥 개같아.
근데 이런 개같은 상황에 대해서 신경과학에서 아예 이름을 붙여놓았더라고.
이름하여 backfire 효과라고 하더만.
이에 대한 연구도 제법 오래되어서 결과도 많이 나와있어.


몇 년 전에 캘리포니아 대학의 뇌과학 연구소에서 연구 참여자들을 MRI 에 넣고 했던 실험이 있어.
MRI 에 참여자를 넣은 다음에, 그 참여자가 강하게 믿는 이념과 반대되는 이야기들을 들려주면서 뇌를 관찰한 거지.
이를 테면, 총 덕후라면 '총기 규제는 더욱 강화해야한다' 라는 이야기를, LGBTQ 지지자라면 '동성 결혼은 절대 합법화해서 안된다' 같은 것들을 들려준 거야.
그러면서 뇌를 스캔해본 결과 알아낸 것은,
본인의 신념과 반대되는 이야기를 들을 때 활성화되는 뇌 부위는, 신체 위협을 느낄 때 활성화되는 뇌 부위와 같더라는 거야.
이 부위는 편도체라고 해. 인간의 감정을 관장하는 곳이지.
즉, 불행하게도 우리는 자신의 가치관에 위배되는 주장을 대할 때 우리를 공격하는 포식동물을 대하는 것과 비슷한 방식으로 대하도록 프로그램 되어있는 셈이지.
(만화): 사실이 적혀있는 책 = 칼을 든 악어
뭐, 우리가 진화해온 과정을 상상해보면, 당장 짱돌 들고 달려오는 적한테 천천히 토론을 시도할 것 같진 않긴 해.
(만화): 나 프랭크는 너 제프가 가진 동굴이 좋다. 나 프랭크는 너를 죽이고 동굴을 빼앗겠다.
(만화): 오오 프랭크, 여기서 중요한 것은 객관적인 토론이야.


우리가 가진 믿음에는 등급이 있어. 버려도 그만인 것들이 있고 버릴 수 없는 핵심적인 믿음이 있지.
(만화): 일반 믿음은 '나는 올리브가 싫어' 같은 아메바, 핵심 믿음은 창조론을 지지하는 로봇.
우리가 가진 핵심 가치관들은 어렸을 때부터 오랜 시간동안 쌓아온 것들이고, 우리는 이게 흔들리는 것을 원하지 않아. 
그래서 워싱턴이 금이빨을 가졌다는 이야기는 쉽게 받아들일 수 있지만 워싱턴이 노예의 이빨로 틀니를 만들었다는 이야기는 사람에 따라서는 절대 받아들일 수 없지.
물론 현대 사회에서 노예제가 나쁜 것이라는 통념이 있어서이기도 하지만, 내가 여기서 하고 싶은 이야기는 '조지 워싱턴이 나쁜 놈이다' 같은 이야기는 우리의 편도체를 자극한다는 점이야.
(만화): 새로운 사실을 목격하고 그걸 없애버리려는 뇌.
뇌가 핵심 가치관들로 만들어내는 것은 마치 집같은 거야. 기초를 닦고 벽을 만들고 창문과 문을 뚫어서 완벽하게 동작하는 일관된 시스템같은 것.
기껏 그런 집을 만들어놓았는데 새로운 사실이 들어와서 그 집을 무너뜨릴 것 같다면? 
우리는 차라리 그 새로운 사실을 없는 것으로 치고 집을 보호하기를 선택할 수 있다는 거지.
몇 번 그런 일을 겪고 나면 아예 집 주변에 펜스를 치고 해자를 파서 새로운 사실의 접근을 원천 봉쇄하기도 해.
이건 내가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신경과학자들이 backfire 효과에 대해서 설명하는 이야기야.

근데 중요한 것은, 
우리가 만든 핵심 가치관의 집은 실제 사실과 완벽하게 일치하지 않아.
시간이 지날 수로 사실과 가치관의 갭은 점점 커지고, 결국 그 집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이 되지.


그래서 뭐 어쩌자고?
혹시 여기까지 읽으면서 '오오 그래그래 나도 그렇게 생각해' 하면서 내 만화에 동조한 사람이 있었다면, 이쯤에서 내가 해결책을 제시해주길 기대할 수도 있겠네.
미안하지만 그런 해결책은 나도 몰라.
75억명의 사람들이 다 다른 생각을 하면서 각자 자기 생각만이 진리인양 소중하게 들고 다니는 이 세상에 대한 쉬운 해결책같은게 어디 있겠냐.
물론 그 중에는 남들보다 훨씬 똑똑한 사람들도 있지. 근데 걔들도 완벽하진 않거든.
게다가 요즘같은 인터넷 시대에는 아무리 바보같은 주장도 얼마든지 근거 자료를 찾을 수가 있거든. 물론 개똥같은 자료지만. 그런 걸 인용하면서 오랑우탄들이 서로 똥이나 던져대는 게 인터넷 토론이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이런 backfire 효과라는 것이 있다는 것을 적어도 우리는 알자는 거지.
이것도 쉬운 일은 아니야. 우리의 이성과 감성이라는 것도 그렇게 딱 나뉘는 것이 아니거든.
그 감성이라는 부분이 우리를 인간적이게 만들기도 하지만 우리를 동물로 떨어뜨리기도 하지.


나 개인적으로는 내가 가진 편도체를 내 새끼 발가락 같은 거라고 생각하려고 노력해.
내가 가진 핵심 믿음이 도전받을 때 내가 느끼는 감정을 내 새끼 발가락이 분노하는 거라고 상상하는 거지.
(만화): 1+3 은 4야. (발가락): 저 말 듣지마 만화가! 1+3 은 타코야!
그리고 소리치도록 둬.
(만화): 모든 수학자들이 1+3 = 4 라는데 동의했어. (발가락): 그건 타코 혐오자들의 음모야!
실컷 분노하게 두지.
(만화): 어떻게 두 숫자의 합이 멕시코 음식이 될 수가 있냐? (발가락): 와우, 당신은 신념의 자유를 인정하지 않으시는군요!

그런 식으로 시간을 달여서 나의 감정적인 부분이 실컷 화를 내게 두고 나면, 비로소 이야기를 천천히 듣고 변화할 수 있어.

이 만화를 통해서 내가 너의 생각을 특정한 방향으로 바꾸려는 것은 아니야. 우리는 다 다르니까.
다만 앞으로 너의 신념이 위협받을 때, 적어도 가끔씩은 그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어보는 여유를 가졌으면 좋겠어.

끝.








아래는 각 이미지 아래에 번역을 붙입니다.



내가 지금부터 이야기를 하나 해줄 거야.
어쩌면 믿기 힘든 이야기일 수도 있어.
뭐 괜찮아
그럴 이유가 있으니까.
하지만, 설령 내 이야기가 너의 가치관과 잘 맞지 않더라도 일단 끝까지 들어보길 바래.




니가 리버럴이든 보수든 중도파든 상관 없어.
니가 개를 좋아하든 고양이를 좋아하든, 설령 타란튤라를 좋아하든 상관 없어.
아침형 인간이든 저녁형 인간이든,
아이폰을 좋아하든 안드로이드를 좋아하든
코카콜라파든 펲시파든
다 상관없어.
단 한가지 부탁하고 싶은 것은, 이 이야기를 끝까지 읽어달라는 거야.




오케이?
좋아 그럼 시작하자.




아마 너는 조지 워싱턴은 나무 이빨을 가졌었다는 이야기를 들어봤을거야.
(조지 워싱턴): (영어 말장난)
[주: 조지 워싱턴은 미국 우파 사이에서는 신성 불가침의 존재같은 겁니다. 박정희 대통령을 상상하시면 되겠네요]




워싱턴은 젊었을 때 이빨이 다 빠져서 나무로 된 의치를 썼다는 거지.
건국의 아버지이자 독립 전쟁 최고 사령관이 나무 이빨을 써서 햄 샌드위치를 먹는 모습을 상상해봐. 좀 그로테스크하지?
(조지 워싱턴): 한 입 나눠줘?
근데 이 이야기는 사실이 아니야.




2005년 미국 치과 박물관에서 워싱턴의 틀니를 분석해본 결과, 이건 나무가 아니라 금, 납, 하마의 상아, 말과 당나귀의 이빨등으로 만든 것이라는 사실이 밝혀졌어. 동물들 입장에서는 악몽같은 모습이었겠지.
[주: 여기서 작가는 근거 링크를 세 개 제공합니다]




자, 그럼 이제 너가 그동안 몰랐던 새로운 지식을 하나 알게 되었으니 하나 물어볼께.
기분이 어때?
나는 하나의 주장을 펄쳤고, 근거를 제시했지. 그리고 모르긴 해도 아마 너는 별다른 거부감 없이 그 주장에 동의했을 거야.
이제 새로운 사실을 하나 알았으니 다음번에 친구들을 만나면 이 이야기를 퍼뜨릴 수도 있겠지.
동의해?
좋아 그럼 계속 해보자고.




아까와 달리, 만약 내가 워싱턴에게는 또 하나의 틀니가 있었다고 주장한다면 너는 기분이 어떨까?
상아나 금 따위가 아니라 다른 재료로 만든 틀니 말야.
노예들의 이빨을 모아서 만든 틀니.
[주: 여기서 또 근거 링크를 세 개 제공합니다]




자 이번에는 기분이 어때? [주: 워싱턴을 상상하시면 안되고 박정희의 새로운 치부에 대해서 들은 보수 아재의 심정을 상상하셔야 합니다. 아니면 반대로 문재인의 치부에 대해서 들은 진보 아재의 심정을 상상하셔도 되겠습니다. 이 만화는 보수나 진보를 지지하기 위한 만화가 아닙니다]
아까보다 거부감이 좀 더 드나?
여기서 이야기를 더 하기 전에 하나 확실히 해둘게.
난 지금 워싱턴을 공격하려는 것이 아니야.
그동안 워싱턴에 대해서 공부하면서 모아놓은 자료들이 조금 있는데, 여기서 증거들을 체리피킹하면 얼마든지 워싱턴을 신적인 존재로 묘사할 수도 있고 악마같은 놈으로 묘사할 수도 있어. 애국자로 만들 수도 있고 괴물같은 놈이었다고 주장할 수도 있어.
근데 그런 것은 내 이야기와 아무 상관이 없어.
내가 워싱턴 에피소드를 이용해서 너한테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사람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접했을 때 어떤 것은 쉽게 받아들이지만 어떤 것은 굉장히 감정적으로 반응한다는 점이야.
워싱턴의 첫번째 틀니 이야기는 받아들이기에 어렵지 않았지?
모르긴 해도, 내가 근거 자료를 보여주지 않았어도 너는 아마 내 이야기를 그냥 믿었을 거야.
하지만 두번째 틀니 이야기를 본 사람들 중 상상수는 아마 엄청 분노하면서 내 근거 링크들을 클릭해봤을 거고, 나름대로 자료를 수집해서 이 만화 아래 코멘트란에 반박문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을 거야.
(만화, 분노한 독자): 니 가치관 따위는 개나 주라고 해!
뭐 괜찮아. 사람은 원래 그렇게 동작하게 되어 있으니까.




몇 개 더 해볼까?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키가 작지 않았어.
이 사람 키는 165cm 정도였고, 이 정도면 당시 프랑스 남자 평균 신장을 넘지.
(표지판): 유럽을 정복하려면 최소 이정도는 커야함.
[주: 또 근거 링크 2개]




집파리는 하루밖에 살지 못하는 게 아니라 꽤 오래, 한 달 정도 살아 [주: 미국에는 집파리가 하루살이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파리1): 아아 짧은 인생이여
(파리2): 아닌데?
[주: 또 링크 2개]




인간이 진공에 노출된다고 해서 터져버리거나 끓어오르지 않아.
그냥 산소 부족으로 기절한 뒤에 죽을 뿐이지.
[주: 또 링크 2]




어때? 받아들이지 별로 어렵지 않지?
그럼 마지막으로 몇 개만 더 볼까?




예수가 크리스마스에 태어났다는 증거는 단 하나도 없어.
(예수): 뭐 괜찮아. 내 생일 좀 까먹을 수도 있지 뭐. 2천년 내내.
[주: 링크 3개]




국기에 대한 맹세를 쓴 사람은 사회주의자야
[주: 링크 3개]




역사에 남은 낙태 허가 판결을 이끌어낸 대법관들은 대부분 공화당에서 임명한 사람들이야 [주: 요즘은 낙태 찬성하면 민주당 반대하면 공화당이라는 공식이 있고, 온/오프라인에서 편 갈라서 지겹게 싸웁니다]




어때, 아까에 비해서 머리가 조금 뜨거워지나?
그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나폴레옹 이야기 들을 때와는 조금 기분이 다르지?
인정하나?
인정한다면, 우리는 도대체 왜 그런 걸까?




왜 우리는 어떤 아이디어는 쉽게 받아들이지만 다른 아이디어에는 거부감을 느낄까?
왜 우리는 기존 믿음과 반대되는 새로운 사실을 들으면 이빨을 갈 정도로 분노하게 될까?
왜 우리는 기존 믿음과 반대되는 사실을 들으면 종종 오히려 기존 믿음이 강해질까?
왜 어떤 사람들은 새로운 이야기를 들을 능력 자체를 상실한 것처럼 보일까?
나같은 일반인에게는 이런 상황은 그냥 개같아.
근데 이런 개같은 상황에 대해서 신경과학에서 아예 이름을 붙여놓았더라고.
이름하여 backfire 효과라고 하더만.
이에 대한 연구도 제법 오래되어서 결과도 많이 나와있어.




몇 년 전에 캘리포니아 대학의 뇌과학 연구소에서 연구 참여자들을 MRI 에 넣고 했던 실험이 있어.
MRI 에 참여자를 넣은 다음에, 그 참여자가 강하게 믿는 이념과 반대되는 이야기들을 들려주면서 뇌를 관찰한 거지.
이를 테면, 총 덕후라면 '총기 규제는 더욱 강화해야한다' 라는 이야기를, LGBTQ 지지자라면 '동성 결혼은 절대 합법화해서 안된다' 같은 것들을 들려준 거야.
그러면서 뇌를 스캔해본 결과 알아낸 것은,
본인의 신념과 반대되는 이야기를 들을 때 활성화되는 뇌 부위는, 신체 위협을 느낄 때 활성화되는 뇌 부위와 같더라는 거야.
이 부위는 편도체라고 해. 인간의 감정을 관장하는 곳이지.
즉, 불행하게도 우리는 자신의 가치관에 위배되는 주장을 대할 때 우리를 공격하는 포식동물을 대하는 것과 비슷한 방식으로 대하도록 프로그램 되어있는 셈이지.
(만화): 사실이 적혀있는 책 = 칼을 든 악어
뭐, 우리가 진화해온 과정을 상상해보면, 당장 짱돌 들고 달려오는 적한테 천천히 토론을 시도할 것 같진 않긴 해.
(만화): 나 프랭크는 너 제프가 가진 동굴이 좋다. 나 프랭크는 너를 죽이고 동굴을 빼앗겠다.
(만화): 오오 프랭크, 여기서 중요한 것은 객관적인 토론이야.




우리가 가진 믿음에는 등급이 있어. 버려도 그만인 것들이 있고 버릴 수 없는 핵심적인 믿음이 있지.
(만화): 일반 믿음은 '나는 올리브가 싫어' 같은 아메바, 핵심 믿음은 창조론을 지지하는 로봇.
우리가 가진 핵심 가치관들은 어렸을 때부터 오랜 시간동안 쌓아온 것들이고, 우리는 이게 흔들리는 것을 원하지 않아.
그래서 워싱턴이 금이빨을 가졌다는 이야기는 쉽게 받아들일 수 있지만 워싱턴이 노예의 이빨로 틀니를 만들었다는 이야기는 사람에 따라서는 절대 받아들일 수 없지.
물론 현대 사회에서 노예제가 나쁜 것이라는 통념이 있어서이기도 하지만, 내가 여기서 하고 싶은 이야기는 '조지 워싱턴이 나쁜 놈이다' 같은 이야기는 우리의 편도체를 자극한다는 점이야.
(만화): 새로운 사실을 목격하고 그걸 없애버리려는 뇌.
뇌가 핵심 가치관들로 만들어내는 것은 마치 집같은 거야. 기초를 닦고 벽을 만들고 창문과 문을 뚫어서 완벽하게 동작하는 일관된 시스템같은 것.
기껏 그런 집을 만들어놓았는데 새로운 사실이 들어와서 그 집을 무너뜨릴 것 같다면?
우리는 차라리 그 새로운 사실을 없는 것으로 치고 집을 보호하기를 선택할 수 있다는 거지.
몇 번 그런 일을 겪고 나면 아예 집 주변에 펜스를 치고 해자를 파서 새로운 사실의 접근을 원천 봉쇄하기도 해.
이건 내가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신경과학자들이 backfire 효과에 대해서 설명하는 이야기야.


근데 중요한 것은,
우리가 만든 핵심 가치관의 집은 실제 사실과 완벽하게 일치하지 않아.
시간이 지날 수로 사실과 가치관의 갭은 점점 커지고, 결국 그 집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이 되지.




그래서 뭐 어쩌자고?
혹시 여기까지 읽으면서 '오오 그래그래 나도 그렇게 생각해' 하면서 내 만화에 동조한 사람이 있었다면, 이쯤에서 내가 해결책을 제시해주길 기대할 수도 있겠네.
미안하지만 그런 해결책은 나도 몰라.
75억명의 사람들이 다 다른 생각을 하면서 각자 자기 생각만이 진리인양 소중하게 들고 다니는 이 세상에 대한 쉬운 해결책같은게 어디 있겠냐.
물론 그 중에는 남들보다 훨씬 똑똑한 사람들도 있지. 근데 걔들도 완벽하진 않거든.
게다가 요즘같은 인터넷 시대에는 아무리 바보같은 주장도 얼마든지 근거 자료를 찾을 수가 있거든. 물론 개똥같은 자료지만. 그런 걸 인용하면서 오랑우탄들이 서로 똥이나 던져대는 게 인터넷 토론이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이런 backfire 효과라는 것이 있다는 것을 적어도 우리는 알자는 거지.
이것도 쉬운 일은 아니야. 우리의 이성과 감성이라는 것도 그렇게 딱 나뉘는 것이 아니거든.
그 감성이라는 부분이 우리를 인간적이게 만들기도 하지만 우리를 동물로 떨어뜨리기도 하지.




나 개인적으로는 내가 가진 편도체를 내 새끼 발가락 같은 거라고 생각하려고 노력해.
내가 가진 핵심 믿음이 도전받을 때 내가 느끼는 감정을 내 새끼 발가락이 분노하는 거라고 상상하는 거지.
(만화): 1+3 은 4야. (발가락): 저 말 듣지마 만화가! 1+3 은 타코야!
그리고 소리치도록 둬.
(만화): 모든 수학자들이 1+3 = 4 라는데 동의했어. (발가락): 그건 타코 혐오자들의 음모야!
실컷 분노하게 두지.
(만화): 어떻게 두 숫자의 합이 멕시코 음식이 될 수가 있냐? (발가락): 와우, 당신은 신념의 자유를 인정하지 않으시는군요!


그런 식으로 시간을 달여서 나의 감정적인 부분이 실컷 화를 내게 두고 나면, 비로소 이야기를 천천히 듣고 변화할 수 있어.


이 만화를 통해서 내가 너의 생각을 특정한 방향으로 바꾸려는 것은 아니야. 우리는 다 다르니까.
다만 앞으로 너의 신념이 위협받을 때, 적어도 가끔씩은 그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어보는 여유를 가졌으면 좋겠어.


끝.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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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The Long Run 08/08 05:11

인간을 일종의 정밀기계로 보는, 유물론이 생각나는 글이네요.
그런데 본문의 저자가 잘 읽어주길 바란 독자들은 이 글을 보다가 뒤로가기를 눌러버릴 것 같은 느낌이...크크크크

나라면 어떤 이슈에 대해 backfire 반응을 보일까 생각해봤는데 어느날 나사에서 갑자기 '우리가 오랫동안 숨겨왔던 것이 있는데, 지구는 사실 평평하고 둥근 접시처럼 생겼음.' 이라는 발표를 한다면 그걸 순순히 믿는 대신 구글에 나사 음모론부터 검색해볼 것 같습니다. 다른 분들도 생각해보시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네요 크크크


OrBef  08/08 05:27
저도 비슷한 생각을 해본 적이 있어요. 알고보니 내가 믿던 것이 진실이 아니었다면, 나는 부끄러워해야 하는가? 라는 의문을 던져봤는데, 경우에 따라서 다르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진실을 알 방법도 없었고 짐작조차 할 계기가 없었던 경우:
예를 들어서, 죽고 났더니 인생이 VR 게임이었다? 조금 허탈할 것 같지만, 이걸 미리 깨닫지 못했다고 해서 부끄러울 것 같진 않습니다.

진실을 알 방법은 없었지만 짐작해볼만한 계기는 있었던 경우:
죽고 났더니 기독교가 진실이었고 난 이제부터 지옥에 가야 한다? 뭐 조금 분하고 창피할 것 같긴 한데, 시간을 돌려도 선택을 달리할 것 같진 않으니 어쩔 수 없지 싶습니다.

진실을 알 방법도 있었고 옆에서 진실을 설파하던 사람도 있었던 경우:
알고보니 트럼프가 진정한 애국자였고 미국의 배나온 총덕후 아저씨들이 운영하는 웹사이트들이 진실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정도의 상황입니다. 이런 상황에 놓인다면 솔직히 조금 많이 창피할 것 같습니다. 이건 정보가 분명히 제 눈 앞에 있었는데 제가 아집에 사로잡혀서 이해하지 못한 거니까요 흐흐흐




포스  08/08 07:23

이거에 관해서 친구들과 토론한적이 있는데
"생각은 유연해야하고, 자신의 신념을 확실하게 하려면 반대쪽 의견을 이해하며 끊임없이 스스로 반박해야 한다."와
"어느정도 확실해진 가치관은 신뢰해야하고, 계속해서 반대쪽 의견을 반박해가는것은 생산적이지 못한 에너지 소모다." 였는데 저는 당연히 첫번째가 옳다고 생각했는데 듣다보니 두번째 말도 일리 있더라구요. 이미 저도 지구 평평론 같은건 당연히 말도안된다고 생각해서 자료같은걸 찾아보려하지 않죠. 인터넷에서 주장하는 모든 진실에 대해서 관련근거를 파헤치지 못하는 만큼 언제 내 생각을 바꿀만큼 노력해야할지 고민하게되네요.



OrBef 08/08 08:11
그러게요.

뭐 사실 저도 지구 평평론이나 안티백서들의 논거들을 신중히 검토해보고 반박한 뒤에 그 사람들이 바보라고 결론내린 것은 아닙니다. 그런 의견을 검토하는데 쓰는 노력 자체가 인생의 낭비라고 생각해서 그냥 넘어가는 건데, 그쪽 입장에서는 굉장히 억울할 수 있겠죠. 근데 저만 그런게 아니라, 주류 vs 비주류가 확실한 경우에는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스스로 검증해보는 과정을 생략하고 그냥 주류 의견을 따를 거라고 생각해요. 사실 이것도 생각하기를 멈췄다는 면에서는 본문에서 비판하는 사람들과 다를 바는 없죠.

다만 저 개인적으로, 제가 가진 신념 중에서 '이걸 바꾸면 더 이상 내가 아니게 됨' 일 정도로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들이 너무 많지 않도록 노력은 하는 편입니다. 곰곰히 생각해보면 제게 있어서 "내 가족과 친구들은 나한테 소중하다" 정도를 빼면 절대로 버릴 수 없는 가치란 것은 없는 것 같더라고요.


개망이 08/08 08:49
사실 후자쪽이 훨씬 경제적이니까요...ㅠㅠ 전자가 옳은 삶이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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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가드 08/08 09:37


[우리가 가진 믿음에는 등급이 있어. 버려도 그만인 것들이 있고 버릴 수 없는 핵심적인 믿음이 있지.]

정치학에 있어선 이 통찰이 중요한데 버클리대의 가브리엘 렌즈라는 학자가 2012년에 쓴 Follow the Leader?라는 책이 이쪽에 있어 두각을 보인 최근 연구입니다. 대체적으로 유권자들은 모든 이슈들에 있어 당 강령과 동일한 입장을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자신이 속한 가족,종교,계급,인종을 배경으로 뚜렷한 정당 선호성를 가지게 되면 자기의 정체성이나 핵심적인 가치관에 위협을 주지 않는 선 내에선 지도부가 보내는 신호에 따라 부차적 현안들에 있어서는 많은 유연함을 보여준다고 합니다. 정당이나 후보를 먼저 선택하고 많은 세부적인 것들은 그것에 끼어맞춰 함몰시킨다는 거죠. 트럼프 이전 공화당이 자유무역적이었던게 쉽게 보호무역 정당으로 돌변한게 대표적인 예가 될겁니다. 요즘같이 정체성 정치가 중요해진 상황에서 이 다이내믹이 예전보다 훨씬 강한 효과를 보이고 있는 것이겠고요.





은때까치 08/10 11:59


잘 읽었습니다! 내용도 좋고 말하고자 하는 바도 공감되네요.
근데 신경과학 전공자로서 한가지 오류에 대해 지적하자면, 정치적으로 반대되는 주장을 들을때와 신체적 위협을 느낄 때 활성화되는 영역이 편도체(amygdala)라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그 두 종류의 자극이 동등하다는 것을 곧바로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논리적으로 그렇기도 하지만, 실제로도 두 자극은 다르다는게 밝혀져 있습니다. 신체가 느끼는 각종 pain에는 엄청나게 많은 종류가 있고, 그것들은 fMRI와 같은 저해상도 이미징으로 관찰하면 구분이 불가능하지만 (예: 둘 다 amygdala 부분이 활성화) electrode나 calcuim imaging 같은 더 정밀한 관측 방법을 사용하면 분명하게 구분할 수 있습니다. pain의 종류의 따라서 각각 다른 neuronal ensemble이 활성화되는 걸 최근 스탠포드의 mark schnitzer 그룹에서 보인 바 있어요.

요약하자면, 심리적인 pain과 신체적인 pain이 같다고 주장하는 각종 자료들은 이제는 틀렸을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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